1.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시인님의 근황이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시 쓰는 이서하입니다. 시집 『마음 연장』에 수록된 산문 「기만한 습관들」 원고 마감할 때가 제가 대학원에 진학한 첫해였어요. 그래서인지 교정을 오간 과정을 다시 보니 전체적으로 앓는 소리를 많이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이후로 지금까지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고, 문학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 이번 시집 제목은 『마음 연장』입니다. 이 제목을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연장은 도구를 나타내기도 하고 시간이나 거리를 길게 늘린다는 의미의 연장(延長)을 비롯하여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시집에 수록된 「집 연장하기」는 시집 원고 중에서 가장 먼저 쓴 작품이네요. 그 시를 쓸 때 난민에 관한 책(『난민, 난민화되는 삶』, 갈무리, 2020)을 읽고 있었어요. ‘연장하기’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 책에 대해 잠시 소개해야 할 것 같은데요, 18년도 코로나19가 확산될 무렵 제주 예멘에 도착한 난민에 대한 혐오를 기록한 것이며, 국가 바깥에서 ‘국민화’에 차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난민화되는 상태(위안부 할머니들,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난민)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한국에 도착한 난민이 제일 처음 보게 되는 것이 출입관리사무소를 가는 길에 내걸린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 사진이라는 점인데요. 국가 권력안에서 작동하는 의미 체계로는 환원될 수 없는 비가시화된 타자들에 대한 주시를 필요로 하는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거주의 문제가 컸어요. 그런 의미에게 ‘정착’의 의미는 그들에게 ‘연장’으로밖에 표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사회적인 제도의 한계가 두 단어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서 쓴 시였습니다.
3. 시인님의 시를 읽다 보면 유독 ‘소리’라는 감각이 두드러진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귀가 없어도 들리는 것”이 있고, “믿으면 무언가 듣게 된다”는 구절이나 “늘 어딘가 닿으려고 노력하는 목은 입을 열고 말한다”는 부분들이 그렇더라고요. 시인님께서 이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시를 쓸 때 가장 스스로에 대해 부정하는 편이에요. 제가 적고 있는 문장이 놓치는 게 있을지 지나치게 염려해요. ‘지나친다’는 것 또한 저의 앎에 근거한 기준일 뿐이라서, ‘쓴다’는 행위는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근대 이원화된 언어는 남성, 인간, 비장애인, 이성애자에 결속된 것으로 여성, 비인간,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언어와 차별적인 의미망을 형성해왔는데, 시를 쓸 때 차별받는 세계를 펼쳐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눈’은 비장애인이 의미체계를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체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본다’는 동사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인데, 상징(의미)로 구성된 세계에서 배제된 제3의 목소리‘들’이 있고, 그것이 낭시가 만짐으로 대변하고 있는 눈빛의 교환이든, 동물들의 언어 교환이든, 청각장애인의 수어이든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해석불가능) 소리’로 표현한 것 같아요.
4.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점은 바로 ‘빛’인데요, “금이 간 곳에서 비로소 빛이 나온다”나 “느닷없이 쏟아지는 흰 빛” “아픈 몸 안으로부터 내비치는 빛” 혹은 “빛이 지탱하는 것 또한 검은 것의 윤곽” 같은 부분을 보면 그렇던데요. 시집의 제목인 『마음 연장』, 그리고 여러 시에서 보이는 ‘빛’은 상관관계가 있나?
완전하고 충만해서 틈이 없는 세계는 균열이 있을 수 없어요. 균열이 생기는 순간 그 틈으로 부적절한 것, 비정상적인 것, 불순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메꿔야 합니다. 이러한 세계는 정지된 상태이자 바디우가 말하는 국가라는 법적 질서에 귀속된 상화 상태인데요. 이 세계에 균열이 났을 때 상황을 정상으로 복원하려는 국가와, 그 상황에 가려진 존재자들, 난민, 여성, 이민자, 장애인 등의 다수의 출현이 불거집니다. 바디우에게 공백은 이름을 갖지 못한 존재들로 사건의 자리로 명시하고, 데리다에게 틈은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 중단된 시간인데요. 이상화된 세계에 균열, 틈, 금이 갔을 때 빛은 존재의 가능성으로 은유하고자 했습니다.
5.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은유나 비유보다는 진술에서 보여지는 문장의 힘을 더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이유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은유나 비유는 “A는 A가 아니다”로 도식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도식은 이미지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물론 시라는 문맥의 정수에는 압축이 있지만 ‘A’를 말하기 위해 ‘A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를 경유한다는 것이 아쉬울 때가 있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이러한 시적 전달이 작가의 일방적인 소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는 ‘이미지’를 다르게 표현하는 것에 능한 재주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저에게 진술이란, 질문에서 시작되어 질문을 정리하는 시간정도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질문에 답을 달아보는 시간, 답이라고 해서 정답이 아니라 정리된 생각 정도가 정확할 것 같네요. 그래서인지 제 시에 대해 고집스럽고 난해하다는 평을 주로 듣는데요, 저 스스로 제가 던진 질문에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평이 의미 있고 좋습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제 시를 읽을 때, 시를 해석하기보다는 함께 질문하는 시간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저에게는 결국 불편한 것들이 질문을 하게 하거든요.
6. 시인님께 시란 어떤 존재일까요?
위의 질문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불현듯 ‘적당하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 적 있어요. 적당하는 것만큼 상대적인 표현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적당하다’는 기준은 적용되는 대상의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 정체성에 따라 다른 범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필요와 충분조건이 그 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시를 쓸 때 현재 쓰고 있는 한 편의 시를 쓴다기보다는 ‘시’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시인이라는 명칭보다는 살면서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내가 서 있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경계하려는 파수꾼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공평무사하지 않다는 최정례 선생님의 문장을 좋아하는데요. 언제부터 시를 썼냐는 질문을 받으면 창작을 시작한 기준으로 얘기를 해야 하는 게 맞으면서도, ‘사실 지금 나 시 쓰는 생각들이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을 하게 돼요. 고등학생 때부터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이 문제는 다른 문제로 확장할 수 있는 진입로 역할을 해주었어요. 아마 저의 형편과 맞닿아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시는 저한테 즐겁거나 친절한 것이 아니에요. 살아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건에 따라 ‘산다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차이를 보이듯이, 저에게는 시는 사는 문제와 직결돼요. 따라서 성실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7. “미치면(狂) 미친다(及)”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인님은 자신이 ‘글쓰기에 광기(狂氣)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광기는 지금도 진행 중인가요?
2016년도에 인터뷰에서 했던 말로 기억하는데요. 새삼 광기가 무슨 표현인지 모르고 남발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그동안의 여성의 서사가 ‘광기’로 표현되어 왔던 것과 견주어 생각해봤을 때 우둔한 답변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광기보다는 ‘예민하다’는 표현으로 정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예민함’이 종종 자기 검열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요. 저의 우둔함이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흘러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스스로 굉장히 놀라요. 무관함에서 오는 생각이나, 행위, 태도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인데, 그렇기 때문에라도 스스로에게 조금 더 벼르고, 날을 세우는 것 같아요. 결국 시를 쓰는 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태하는 태도와 직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8. 2016년 데뷔하신 후 이번이 세 번째 시집으로 압니다. 그간 시인님의 시 세계 또는 시를 대하는 태도에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한결 같은 게 있다면 저의 무지를 끊임없이 탐독하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변한 것이 있다면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의 영역을 사회문제로 바라보고자 한다는 점인데요. 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사회문제들은 역사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역사는 현재와 소통 가능하기 위해 가려진 것들을 사회문제 일반으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은 금이 간 곳에서 시작될 것이라 믿어요. 이러한 믿음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조각난 파편의 단면을 찾아 맞춰나갈 것이 아니라 부서진 충격에 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마음을 연다는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살 만한 삶의 지속, 폐제된 삶의 지속은 금이 가 깨어진 그곳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9. 『마음 연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고른다면? 그 시를 고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뒤로 더 뒤로」는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생각하며 쓴 시인데요. 하층계급인 인물들(선비, 첫째, 간난이)의 계급의식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소설이에요. 마을의 지주인 덕호에게 유린당한 하층계급의 여성 선비와 간난이가 등장하는데요. 용현 마을을 떠난 간난이는 자신이 당한 수모와 성착취와 같은 문제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하지 않으는 안 된다는 자각에 앞서 계급의식에 눈을 뜨고, 선비도 간난이를 따라 인천 대동방적공장에서 일하며 영향을 받습니다. 덕호의 딸 옥점은 신여성으로 신분적인 차이를 보이고, 첫째는 지주와 소작농에게 육체적으로 착취당하고 몰수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대서사로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강경애의 소설을 ‘복덩이’와 연결한 이유는, 소설에서 가장 강렬하게 전달된 이미지 때문인데요. 선비가 돌보는 닭이 낳은 달걀을 깨어지지 않게 애쓰는데, 옥점이가 그 달걀을 몽땅 가지고 상경할 때 슬퍼하던 선비였어요. 선비는 닭을 돌보고 닭이 낳은 달걀의 개수를 세면서 큰 기쁨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덕호에게 겁탈당한 이후에 인천으로 이동한 선비의 삶은 결국 그를 폐병에 걸려 죽음에 내몰게 되면서도, 의식의 변화를 야기해요. 뭐랄까, 신분적, 계급적인 차이가 구조적으로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끌고 가는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시대적인 배경은 식민지기이고 지금은 자본의 시대인데, 삶이 여전히 계란 같다고 생각했어요. 달걀이 여성착취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달걀을 익히는 이미지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삶이 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단단해질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소의 점유는 차별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라도, ‘같은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쓴 시예요..
10. 이번 시집에 실린 시 혹은 에세이와 관련된 실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산문은 부끄러울 정도로 ‘나’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나의 일상을 적어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저는 걱정이 많고, 걱정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고요. 강박적으로 정돈을 하는 편이에요. 산문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통제 불가능한 마음 상태를 보이는 것에 이입하며 강박적으로 정돈하는 까닭은, 실체가 없는 상태를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물로 보이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어느 정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모순적이라면, 악착같이 살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11. 정재율 시인은 시인님을 “(다른 이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으로 표현했습니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마운 일인데요. 글쎄요, 저는 회의적인 구석이 있어요.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생각보다 실천이 무딘 것도 같고. 상대가 받고 싶은 좋음과 제가 주고 싶은 좋음이 상응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상대를 생각하려고 해요. 이게 맞는 건가, 이게 필요할까 등등. 재율 시인이 저에 대해 표현해준 것은 오히려 재율 시인에게 더 적합한 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2. 시인님의 MBTI는? INFJ일 때도 있고, ENFJ가 나올 때도 있어요.
13. 이번 시집을 한두 줄로 독자들에게 설명한다면? 무너진 마음을 재건할 수 있는 연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4. 핀 시인선에는 〈시인의 말〉이 없는데요. 이 지면을 통해 〈시인의 말〉을 덧붙인다면?
징후를 예감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외의 인간은 불행을 되감기 때문에 징후적일 수밖에 없었다
15. 다음은 시인님을 잠시 혼란에 빠트리기 위한 밸런스 게임입니다.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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