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詩詩낙락 담당자들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벌써 9월이 끝나갑니다. 이 레터를 열어보실 때쯤엔 새해가 100일도 안 남은 시점이라는 사실, 믿겨지시나요? 시간이 너무나도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 속상한 요즘입니다.
구독자님들은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요즘 도파민 중독이라고 하죠. 자극적인 콘텐츠를 무수히 접하다 보니, 자기 전이나 출퇴근길에 책보다는 휴대폰을 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가끔 스스로를 돌아보면 현타가 오기도 해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도화된 문명이, 결국 인간을 해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최근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레터와 사이트를 구독했습니다. 이왕 휴대폰을 사용하는 참에, 생각 없이 보게 되는 SNS보다 지식을 습득하고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콘텐츠를 소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종일 도파민 폭발하는 콘텐츠를 소비했다면, 깊은 사유를 해볼 수 있는 詩詩낙락 레터로 시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잠시 도파민에서 벗어나, 사유의 바다로 깡충 뛰어들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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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토끼 걱정』을 작게 속삭여보세요.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나요? 하얀 눈이 날리는 깊고 긴 겨울밤, 겨울잠 자는 걸 까먹은 토끼 한 마리가 눈 덮인 땅을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그런 토끼가 걱정되어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는 어린아이가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이번 시집 제목을 보며 어떤 이야기가 그려졌나요?
네 번째 레터에서는 유희경 시인의 신작 시집 『겨울밤 토끼 걱정』을 소개합니다.
『겨울밤 토끼 걱정』은 낯선 감정을 섬세하게 발견하는 유희경 시인이 2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 번째 시집입니다. 이해불능의 감각을 일깨우는 시 37편과 한낮의 미몽과 한밤의 상상이 불러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관한 에세이 「이야기, 나의 반려伴侶」를 실었습니다. 이번 시집은 독특하게도 시에 ‘이야기’라는 하나의 제목을 부여하고, 각각의 이야기에 부제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제목보다 긴 부제가 있는가 하면, 다른 책에서 인용한 문장을 부제로 붙이는 등 제목만 보아도 흥미로운데요. 시집 속에서 이야기는 불완전한 기억, 이해, 언어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시인은 모든 사건이 시와 마주치는 순간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며 끊임없는 자기 고백을 통해 이야기와 하나 되는 경험을 전달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희경 시인의 이야기 속에는 기억, 상실, 그리움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는데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릴까요? 지금, 우리 모두 詩詩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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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조선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이다음 봄에 우리는』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인스타그램 : @morteble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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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년 만에 유희경 시인님의 다섯 번째 시집이 나왔습니다. 시집을 출간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또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시집 출간은 괴로운 일입니다. 이유를 종잡을 수 없으나, 매듭짓지 못했다는 자책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시 쓰기란 결국 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도 합니다. 위로를 받지는 못합니다. 해결은 못 하고 차츰 잊게 되는 거지요. 그리하여 나아졌다고도 믿게 될 것입니다. 그간의 출간 경험 덕분에 요령도 생겼습니다. 나의 ‘이러한’ ‘상태’를 들키지 않을 방법이 없으니 누군가를 만나거나, 누군가와 길게 대화를 나누는 일을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요즘 저는 일종의 외톨이가 되어 있습니다. 혼자가 되는 일을 즐기기도 하거니와 적성에도 제법 어울리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생활이 간소해지기 때문에 편리한 점도 많고요. 남는 시간엔 쓸 궁리와 읽을 각오를 합니다. 곧장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늘 그렇듯.
2. 이번 시집의 제목은 『겨울밤 토끼 걱정』입니다. 겨울밤 창가에서 턱을 괴고 토끼를 걱정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다정다감한 제목인 것 같아요. 시집에서 “‘겨울밤 토끼 걱정’이란 제목은 농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농담에서 비롯된 제목인가요?
「이야기─겨울밤 토끼 걱정」은 2022년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쓰고 발표했을 적만 해도, 그 뒤로도 한참은 이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어요. 결이나 의미는 둘째 치고 너무 작은 그릇이다, 싶었을 것입니다. 막상 시집 제목을 정해야 할 때가 다가오자, 마땅한 것이 없어 고민이 깊었지요. 그즈음 김소연, 김선오 시인을 만난 자리에서, “다음 시집 제목, ‘겨울밤 토끼 걱정’이 어떨까요?” 하고 말했는데 물론 농담이었습니다. 웃기고 싶었고 아하하, 웃을 줄 알았지요. 그러나 뜻밖으로 반응이 좋았고, 그제야 깊이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시집 전체의 형식과 내용적 측면에서의 ‘이야기’란 그리고 ‘시’는 ‘겨울밤 토끼 걱정’과 닮지 않았나. 멀고도 가깝고 부질없으면서도 의미 있는 행위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스스로가 설득되고 말았습니다. 하여간 농담이란 난데없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는 것입니다.
3. 시집에 실린 시의 제목은 대부분 ‘이야기’이고, 그 옆에 나란히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제목을 동일하게 설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함께 수록된 에세이 「이야기, 나의 반려伴侶」에서 “당장의 이야기는 어쩐지 시시하다. 맨 처음이거나 맨 마지막. 이야기의 본령은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하셨는데요. 이러한 생각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지요?
Bread는 불가산명사로 앞에 부정관사 a를 붙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빵은 하나 둘 셀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한 봉지 가득한 빵 냄새. 부드럽고 따뜻한, 이 냄새는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골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골목 끝에는 빵집이 있었지요. 간판에는 높다란 토크Toque를 쓴 제빵사가 사람 좋게 웃고 있었고, 통창 너머로는 갖가지 색과 모양의 빵이 보였지요. 나는 그중에서 롤 케이크의 맛이 궁금했습니다. 동그랗게 말린 그 속에는 비밀스런 맛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지요. 먹어본 적이 없던 것도 아닙니다.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 앞을 지날 때면 나는 항상 그 롤 케이크의 맛이 궁금했을까. 여태 나는 내가 상상하는 롤 케이크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자주 골목 끝 빵집과 롤 케이크의 맛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Bread가 불가산명사라는 것도, 그 앞에 부정관사 ‘a’를 붙일 수 없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늘 이야기를 의식하는 방식이고, 이로부터 시를 길어 올려보려는 노력의 근거입니다. 좀 이상하지만.
4. 작품을 읽으면서 ‘기억, 상실, 그리움’의 정서가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읽고 나면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화자의 마음에 대해 천천히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어요. 혹시 시인님도 누군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해보신 적이 있나요? 요즘 가장 그리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말씀해주신 ‘기억, 상실, 그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시간은 나아가는 방식으로 제시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서로 다정해 보이는 저 세 단어들은 삶에 주어진 형식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저의 시를 읽는 독자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다면 그것은 읽고 있는 ‘지금-당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흔들어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나 불가능하겠죠(바로 그 불가능성이 저의 시 쓰기의 원동력입니다!). 그에 따른 체념의 여운이 “먹먹한 마음”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건 그렇고, 그리운 사람은 너무 많아요. 저는 너무 멀리 왔어요. 오래 살았고요. 이따금 이미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중이라고 착각할 때도 있을 만큼.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겠지요. 그건 조금 두려운 일입니다.
5. 「이야기─손바닥만 한 사진 한 장」은 영화 속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물들의 대화를 축약해서 적어보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착안한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또, 시인님이 사랑해서 벌인 일 중에 가장 무모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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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주인 : 대니얼은 파란 나라에서 왔어. 꿈과 희망이 있는 멋진 곳이지. 히치 : 건배할까요? 대니얼 : 나는 얼치기가 아니에요. 나는 관광을 하러 온 게 아니에요. 나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히치 : 그를 찾는 이유가 뭐죠? 붐 : 사랑하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찾을 이유가 없잖아. 맞지, 대니얼. 대니얼 : 나는 대답을 듣고 싶어요. 그다음은 나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를 죽이게 될까요. 나는 두려워요. 붐 : 걱정하지 마. 우리가 증언해주지. 사랑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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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산만한 사람이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는 즐기지 않습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장르적으로 따지자면 그림책을 의식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장면들을 생각했어요. 누군가 이 시를 읽고,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사랑해서 벌인 일 중 가장 무모한 것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에는 끝이 없어요. 대책도 없고요. 끝이 없는 허방 속으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를 이야기의 속성이라 적은 적이 있지요.) 떨어지고 떨어지다가 지쳐서 결국 기어 나오는 한계를 체감하기란 정말 끔찍하죠. 사랑에 빠질 때마다 매번 그 끔찍을 느껴야 한다는 것도요. 아아.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몸서리쳐지는군요.
6. 「이야기─책에 파묻힌 사람」에서는 시인님이야말로 정말 ‘책에 파묻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집서점을 운영하고 계시니, 온종일 책 더미에 파묻혀서 지낸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니까요. 책 무더기에 깔리는 꿈을 꾸거나 그런 상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서점은 책을 잘 관리해야 하므로 책 더미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되려, 신문사 편집국 문화부라든가, 현대문학 편집실이 책 더미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제 삶 반경으로만 따져보면 제 방이라든가, 침실이 그러합니다. 책을 어찌하지 못해서 말 그대로 더미의 형식으로 쌓여 있곤 하죠. 그런데. 저는 그 더미들을 볼 때마다 소외감을 느끼곤 합니다. 차라리 깔렸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지요. 책은, 읽기와 쓰기를 포함한 책과 관련한 모든 행위들은 저는 밀어내고 배격합니다. 저는 언제나 바깥에 있어요. 그리고 침투를 꿈꿉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안으로 들어가, 텍스트의 형식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문득 궁금해지는데, 질문을 해주신 편집자께서는 글자나 문장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어떤 것을 택하시겠어요. 저는, ‘있다’라는 동사를 바라여봅니다. 그렇게 있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설령 비어 있는 기호라 할지라도, ‘있다’로 읽히게 될 테니까요.
7.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정하는 시나 작품과 관련된 실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야기─토끼와 고슴도치」는, 제가 운영하는 서점 동료로부터 선물 받은 손수건에서 비롯한 시입니다. 토끼와 고슴도치가 파란 실로 수놓인 손수건인데요, 동료는 싱긋 웃으며(정말 싱긋 웃었습니다), 우리 둘의 모습 같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 질문에 여지없이 걸려들었지요. 내게 선택지는 토끼냐 아니면 고슴도치냐 둘뿐이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군요.” 혹은 “어디가요?” 하고 대답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진심으로 고심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더 나은 쪽을 택하는 것이 윤리적일 수 있는 것인가. 외양적 유사성을 제외하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따위의 고민은 잠시 저를 ‘지금-당장’ 삶 앞에 놓아두었고 그것이 참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순간 전복顚覆을 느꼈는데, 어쩌면 호접지몽胡蝶之夢적 위기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정도로 정리하지요. 그것에 대해서라면 또 언젠가 길게 적을 일이 있을 줄 압니다.
8.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살아보아야지요. 삶은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라면, 산문집과 그림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점도 조금 더 해볼 작정입니다. 약속을 지키거나 읽고 쓰는 일(쓰는 것은 읽는 일입니다)은 정말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열심히 먹고 자고 앓고 합니다. 그럴 것이고요.
9. 시를 처음 접하거나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또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고 계신데, 서점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의무교육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시를 접한다는 말은 사실상 성립 불가능합니다.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는, ‘어렵다’라는 어휘를 다른 것으로 대체-선택해볼 것을 권유하곤 합니다. 시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다르다, 쯤은 어떨까요. 그러면 방향성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꼭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영화나 드라마라는 형식을 난감해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시가 난감하겠지요. 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 강요하기까지 하는데, 그러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거기 시가 있다는 것은 의식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느닷없이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발생할 때, 갖은 수를 써도 소용이 없을 때, 속는 셈치고 한번 펼쳐볼 수 있도록 말이지요. 위트 앤 시니컬에 오시는, 오셨던 분들께는 좌우간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정말이지 저는 매일매일 미안하답니다.
10. 다음은 시인님을 잠시 혼란에 빠트리기 위한 밸런스 게임입니다. 두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골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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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중 더 걱정되는 것은? 겨울밤 토끼 VS 여름밤 폭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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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토끼입니다. 그렇게 태어나버렸어요 저는. 못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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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일에 손편지 다섯 장 VS 생일에 치킨 기프티콘 다섯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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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손편지 다섯 장입니다.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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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랜덤으로 새로운 인생 살기 VS 지금 이대로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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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살기. 일단 다 살아봐야죠. 주어진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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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편지 잘 읽으셨나요?
가을 냄새로 가득한 유희경 시인의 편지에
답장하고 싶다면 버튼을 눌러주세요.
편지에 대한 답도 좋고, 간단한 안부 인사도 좋습니다.
자유롭게 답장을 적어주시면, 유희경 시인에게 전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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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이야기─창문
그제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 위에는 손바닥 두 개를 합쳐놓은 것만 한 볕 두 장이 놓여 있었다. K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가만히 검지를 펴 천장 쪽을 가리켰다. 저기 창문이 있었다고? 보고도 믿을 수 없이 난데없는 자리에 굳게 닫힌 비좁은 창문. 열고 닫을 수는 있는 것인지, 그 너머로는 무엇이 보이는 것인지 물어보아도 K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사다리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앉아 있던 의자를 창문 아래에 놓아보아도 닿기에 턱도 없을 뿐. 밤이 되면 달빛이 들어오나. 여전히 K는 묵묵할 뿐이며. 한참 궁리하다 지친 나는 슬금슬금 자리를 움직여 가는 볕을 깔고 앉았다. 어느새 무릎 위로 올라온 볕이 조그마하고 귀여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데리고 놀았지. 방금 창밖으로 신이 지나갔을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알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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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이야기─일행
잠깐 한눈을 팔았을 뿐인데, 일행들은 한참이나 앞서가고 비가 온다. 가릴 비는 아니다. 맞을 비도 아니고 우리는 어중간해져서, 그런데 어디로 갈 거야.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며 큰소리 내 보지만, 들리지 않는 것인지 일행은 대답이 없었다. 어쩌면 모르고 있는지도. 그런 나와 일행의 사이 자전거가 한 대 지나간다. 능숙한 솜씨로, 우산을 쓴 사내가 몰아가는 자전거가 빗길을 가로지를 때. 아룽대는 등롱이 걸려 있고 거기 작은 술집이 있다. 꼬치를 태우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서 나는 지친 날개를 접은 새처럼 그곳으로 들고 싶다. 여기는 어때? 이 밤을 태워보기 적당하지 않을까. 그러나 내 의견을 들어줄 일행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 간 것일까. 나를 잊은 것은 아닐까. 그래도 상관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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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된 사진에서, 다양한 색감의 그림에서, 우연히 본 문장에서조차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곤 합니다. 『겨울밤 토끼 걱정』의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이야기’입니다. 구독자님들은 이야기 좋아하시나요? 문득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야기 중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독자님들은 책 말고 영화와 드라마도 좋아하지 않나요?(라디오도요!)
이번 시집을 읽다 보면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지어온 유희경 시인의 이야기 주머니가 궁금해지곤 합니다. 얼마나 크고 깊은 이야기 주머니를 지니고 있을지 말이지요. 그래서 유희경 시인께 요청해보았습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짧은 이야기를 지어달라고요. 시인님의 사진과 이야기, 어떤신가요? 사진과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흘러갑니다. 함께 창문 밑에 쪼그려 앉아 볕을 바라보기도 하고, 혼자 남겨진 화자의 손을 이끌고 맛있는 꼬치 냄새가 나는 작은 술집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가 생각나는지요?
이야기를 잇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학창 시절 쓰던 릴레이 소설이나 글짓기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읽고 상상만 해왔다면, 오늘은 노트와 연필을 꺼내 이야기를 직접 써보는 건 어떨까요?
구독자님들의 이야기를 詩詩낙락 방명록에 공유해주세요. 위 사진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여러분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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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詩낙락 레터 구독자님들을 위한 유희경 시인의 낭독 영상을 공개합니다. 유희경 시인이 낭독한 시는 신간 시집 『겨울밤 토끼 걱정』의 표제작 「겨울밤 토끼 걱정」입니다. 시인의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한 편의 동화 같은 낭독 영상을 감상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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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창밖을 보았습니다 흔하디흔한, 차라리 어두운 쪽에 가까워서 누군가를 깜짝 놀래키는 용도에 걸맞을 가로등 아래 작고 하얀 물체가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토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토끼였고 점점 토끼였고 귀가 길고 눈은 빨갛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토끼인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도심의 가로등 아래 토끼라니 나는 그만 흥분하여 여러분 토끼입니다 저기 토끼가 있어요 외쳤지요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토끼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토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 채 점차 나는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긴 귀를 감추려 들거나 빨간 눈을 깜빡이거나 깡충깡충 뛰어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는 토끼는 하얀 조약돌이나 버려진 빵 봉투가 아닐까 귀가 길고 눈이 빨간 하얀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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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충깡충 뛰어 사라지는 빵 봉투 하얀 조약돌의 눈과 빵 봉투의 귀를 가진 토끼의 형식은 가로등 아래 꼼짝도 하지 않고 대신 저것은 토끼가 아니지 않은가 토끼일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불신으로 가득 차서는 마침내 저것은 토끼가 아닙니다 저것은 토끼가 아니에요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창밖은 짙어가는 어둠 토끼와 토끼가 아닌 것 사이에서 나는 고통스러워 더 이상 창밖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했는데 다시 혹한의 겨울밤이 되면 마른 바람이 찾아와 창문이 덜컹이고 뼛속까지 시려 잠이 들지 못하는 그런 밤이 찾아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토끼를 걱정하게 됩니다 너무 추운 것은 아닐까 토끼는 무사한 것일까 슬그머니 창밖을 내다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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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래의 침묵 가능성의 보류 뜻밖의 이해 마침내 그는 동전의 결정을 배반하기로 했다 지쳤기 때문이다 어두운 방에서 그는 생애의 마지막 동전을 던진다
「이야기―떨어진 것은 동전이다 그것은 좁은 소리를 따라 굴러갔으며
동그랗고 부드럽게 흔들리다가 마침내 멈추었다」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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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앉지 않는 때와 아무도 없는 때 사이에는 느닷없이 환한 창밖이 있고
여전히 아무도 없는 오후. 나는 나를 제외하기 위하여 문을 잠근다.
「이야기―나의 오후」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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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불빛이란 무엇이든 컴컴하게 만들지
잠깐 너와 나는 서로를 삼킨 것처럼 입을 다물었는데
그때의 긴 사이 여기와 거기 나와 너 그 너머의 무엇 아뜩한 그것이 들리니
무엇이 만져진 것일까
「긴 사이―이야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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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 사람은 실을 풀었다. 그것이 시름인지 감탄인지 알 수 없어서
감고 감고 또 감고 있었다.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가위를 건네는 이가 있었다. 툭,
「이야기―만단정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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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나는 오직 나, 벌거벗은 나, 누가 안다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놀려댈 나에게만 집중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다. 그러니 실패를 위한 틈도 없다. 삶도 죽음도 없다. 잠시 있다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시공간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이야기이다.
에세이 「이야기, 나의 반려」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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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 이야기의 첫날이고 어떤 이야기의 종점이다.
에세이 「이야기, 나의 반려」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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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토끼 걱정』 속 좋은 문장을 모아 소개합니다. 한 편의 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도 내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있고, 그 문장을 자꾸만 읽다 보면 그 시를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아직도 어려운 시이지만,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찾으면서 시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구독자님들은 어떤 시가 마음에 드시나요?
너무 짧은 문장이라 적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한 이야기의 첫날이고 어떤 이야기의 종점이다” 이 문장도 너무 좋아 슬쩍 적어봅니다.
한껏 쌀쌀해진 가을밤, 『겨울밤 토끼 걱정』 필사를 시작해보세요.
혼자가 싫다면, 유희경 시인과 함께하는 필사 모임 핀PIN사단을 신청해보세요.
(이벤트 코너에서 〈유희경 시인과 함께하는 핀사단〉 절찬 모집 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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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레터의 주인공, 서대경 시인의 못다 한 이야기
핀 시인선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핀 시인선을 읽어보신 구독자님들은 아실텐데요. 바로 '작가의 말'입니다. 핀 시인선에는 작가의 말 대신 에세이를 싣고 있어요. 이번에 구독자님들을 위한 에필로그로 서대경 시인의 작가의 말을 준비했습니다. 11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굴뚝의 기사』를 마무리하는 서대경 시인이 전하는 가슴 뭉클한 글을 놓치지 말고 꼭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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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면 테스트를 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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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숨은 자아 찾기 테스트
시집 『굴뚝의 기사』 속 나의 숨은 자아는?!
『굴뚝의 기사』 출간 기념으로 ‘나의 숨은 자아 찾기’ 테스트를 제작하여 현대문학 인스타그램에서 이벤트를 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아직 해보지 않았다면 테스트를 해보세요! 재미로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맞아서 놀랐다는 후기가 많았습니다. (담당자들도 생각보다 딱 맞아서 놀랐다는..👀)
📌 핀 시리즈 VOL. 8
이번 시리즈는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이 직접 선정한 작품 6점을 표지화로 싣습니다. 새로운 감각으로 여섯 시인이 풀어나가는 이번 볼륨의 에세이 주제는 ‘반려’입니다. 개성 있는 여섯 시인이 공통 주제로 풀어나가는 에세이,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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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김승일 항상 조금 추운 극장
044 정현우 소멸하는 밤
045 정재율 온다는 믿음 |
046 이영주 좋은 말만 하기 운동 본부
047 서대경 굴뚝의 기사
048 유희경 겨울밤 토끼 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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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자 노동자들의 편집후기
편집자 K : 유희경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을 올립니다. :) 저는 '없다'로 존재하고 싶습니다. 텅 빈 공간에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겠습니다. '없다'는 대척점에 서서 '있다'로 계신 선생님을 오래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싫던 겨울이 기다려지네요. 그렇기에 더욱 귀한 작품입니다. ❣️
마케터 Y : 시집을 덮는 순간, 유희경 시인이 들려줄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속삭여줄지 기대하며. 『겨울밤 토끼 걱정』 많관부. 🐰🐰
디자이너 P : 『겨울밤 토끼 걱정』을 읽으면서 공감하기도 했고, 위로받기도 했습니다. 다가올 겨울,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까먹으며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보려고 합니다. 그때는 다르게 읽히겠지요?
디자이너 K : 토끼는 잘 있는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이번 시집 마감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오는 겨울 춥다던데요. 어딘가에 있을 각자의 토끼를 생각하는 겨울이 될까요? 토끼도 내 걱정을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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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토끼 걱정』 출간 이벤트
이벤트 1.
온라인 서점에서
『겨울밤 토끼 걱정』구매 시,
초판 한정 인쇄 사인본 증정!
이벤트 2.
온라인 서점에서 시집 구매 시,
유희경 시인의 사진으로 만든
술술 이야기가 써지는 연필 세트
(한정 수량, 마일리지/포인트 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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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시인과 함께하는 핀사단 모집
『겨울밤 토끼 걱정』 핀사단을 모집합니다. 매주 금요일, 유희경 시인이 직접 고른 시와 안부를 담은 문자메시지를 받고 일주일간 필사를 해보세요. 3주간의 필사를 완료한 분들께는 유희경 시인의 사진으로 만든 연필 세트와 낭독회 초대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핀사단으로 선정되신 분들께는 『겨울밤 토끼 걱정』을 보내드립니다.)
당첨자 발표 : 10월 6일(금)
(자세한 내용은 참여하기를 눌러 확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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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너만 보고 있을 때……
부담스럽지?”
강화길의 새로운 여성 서사!
가족 안의 부조리와 혐오에 무뎌진 한 여자가 삶의 자극점을 찾아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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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설, 에세이에 이은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시작!
<부커상> 최종 후보 정보라의 첫 중편소설
“이 소설은 우리를 꽤 신념 있는 ‘인간’이
되고 싶게끔 한다.”
천선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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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5인의 공포 앤솔러지
삶을 잠식하는 기묘한 악몽,
내일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지금, 여기 공포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기괴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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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냄새』 (미정)
〈문학동네신인상〉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김지연의 첫 중편소설
코로나로 감염된 후, 후각은 돌아왔지만
맡을 수 있는 건 악취뿐이다.
기억의 냄새들이 악취가 되고,
언젠가는 스스로의 냄새도 악취가 되리라는
한 인간의 초상을 그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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