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번째 시집 이후 이번 시집이 나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 듯한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두 번째 시집이 들으면 섭섭해하겠어요. 시집을 낸 지 2년 만이라 오히려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걸을 때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빼곤 느린 편이거든요. ‘빈 수레가 요란한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나.’ 원고를 보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털었다’는 해방감은 들지 않고 제가 쓴 글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가길 바랐습니다. 제 시는 가까이에서 봐도 왜소해요. 그래서 밖으로 보낼 때 한 번 더 살피게 되고 뛰지 말고, 울지 말고, 아는 길도 잘 보고 다니라고 당부하게 됩니다. 물론 그런다고 나아지진 않죠. 시에게 저는 잔소리 대마왕일 뿐.
2. 이번 시집의 제목이 『세모 네모 청설모』인데요, 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시인이면서도 제목 짓기에는 영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으십니다. 이번 제목은 마음에 드나요?
마음에 들어요. 이번을 계기로 약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청설모니까 눈길을 가볍게 뛰어다니면 좋겠어요. 제목은 제가 지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좋아해서 결정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웃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한 글자씩 함께 지었다고 생각해줬으면.
3. 시인님의 시를 읽으면 잔잔한 일상의 풍경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면서도 그 안에 뭔지 모를 아련함과 그리움, 외로움 같은 정서가 느껴집니다. 이를 두고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유머와 존재의 빈자리가 주는 쓸쓸함이 공존하는 시라고 평하기도 하던데요. 적절한 평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추운 날, 삼십 분 기다려서 붕어빵을 사다 주고 싶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과분한 평이에요. 반대로 평이 나빠도 어쩔 수 없어요. 데뷔하고 나서 ‘이건 시가 아니다’라는 댓글을 우연히 봤어요. 신문에 실리니까 들떠서 찾아본 건데 그걸 제일 먼저 본 거예요. 놀랐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거라 생각하니 이해가 됐어요. 글이 손에서 떠나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4. 「햇빛」이라는 시에서 “꿈이 물속으로 나를 떠밀어 / 수심이 깊어질 때면 // 쌍무지개 휘어지도록 / 붙잡아주는 이”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 존재는 과연 누구 혹은 무엇일까요?
제목에 ‘햇빛’이라고…
5. 시인님의 시를 ‘시린이(입문자)들도 보기(읽기) 좋은 시(시집)’라고 보는 독자들도 있던데요. 시린이를 위한 특별한 가이드나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써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필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독자가 되니까. 입문자 가운데는 시를 읽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미 시를 쓰고 있거나 쓰고 싶어 하는 분들도 계세요. 직접 말을 안 할 뿐이죠. 시는 진입 장벽이 약간 높아요. 갑자기 훅 들어올 수 없는데 이럴 때 필요한 게 ‘서툴게 쓰기’예요. 쓰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잘 써야 혼이 안 날 것 같은데 서툴게 쓰는 방법도 있어요. 그래서 일단 써보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타인의 글을 관찰하다 보면 어려운 시를 읽는 것도 한결 수월해질 거예요.
6.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님 특유의 다양한 언어유희를 목격할 수 있어요. ‘세모 네모 청설모’도 그러려니와 ‘길멍 눈멍 물멍 불멍 흐리멍’ ‘말(馬)과 말(言)’ ‘거리(距離)와 거리(街)’ 등의 언어유희는 시인님이 시를 특정 짓는 개성 가운데 하나인데요, 이러한 장치가 주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유희는 맞는데 저보다 잘 쓰는 시인들이 많으니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안 됩니다. 장치까지는 아니고 문장을 단조롭게 쓰려고 해요. 쓰는 와중에도 소리 내서 읽는 편이고요. 전략도 없고 시에 의미를 많이 숨겨두지도 않으니까 읽기 편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읽기 편하다는 건 제가 한 이야기보다 읽는 사람들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개성을 보여줄 영역이 약간 줄어들기도 하죠. 그래도 옆자리는 늘 비워둡니다. 마음은 편해요. 누군가 앉을 수 있으니까.
7. 에세이 「별명」을 읽어보면 시인님은 이름 대신 여러 별명으로 불렸는데, 최근에는 별명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했어요. 그럼에도 시인님이 속한 다양한 모임(공간)에서 시인님을 지칭하는 별명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소개 좀 해줄 수 있나요?
에세이 속 별명들로 불린 지는 꽤 됐습니다. 동생이 가끔 밍크라고 부릅니다. 제가 동생을 꼼미(동생 이름은 팔이 아니고 경미입니다.)라고 부르는 것과 같아요. 그 외에는 ‘민구 시인’이라고 부르거나 가까운 사이들끼리는 ‘구’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영구나 맹구를 만날 기회가 이제는 없어요.
8.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그리고 시 혹은 에세이와 관련된 실제 에피소드가 있다면?
낭독해야 한다면 「한 사람」을 읽어주고 싶어요. 지금도 여럿이 아닌 한 분에게 말하듯이 쓰고 있으니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 시에 대해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쓸 땐 덤덤해도 글이 완성되면 구멍 난 양말을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아무리 기워도 엄지발가락 쪽에 구멍이 나는 그런 양말이요. 지금은 새 걸 하나 사서 신으면 되지만 예전에는 어머니가 반짇고리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 구멍을 기워주셨습니다. 그런 장면은 생생해요. 두 번째 시집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은 시 「기념일」이 있었고 이번에는 에세이 「별명」 안에 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9. 시인님에게 2024년은 어떤 해가 될 거로 보나요? 시에 쓰신 것처럼, 달력에 살이 붙을 만큼 좋은 일이 쌓일 것 같나?
시를 정말 열심히 읽으셨군요? 감사합니다. 2024년에는 더 부지런해졌으면 좋겠어요. 낭독도 하고 지금처럼 계속 커피 로스팅하고 싶습니다. 봄부터 로스팅을 배우고 있어요. 이제는 어느 콩이든 볶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어요. 내후년에는 로스터리 창업을 하고 싶습니다. 느리지만 시를 계속 쓰는 로스터가 되고 싶어요.
10. 다음은 시인님을 잠시 혼란에 빠트리기 위한 밸런스 게임입니다.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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