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으면 들판으로 제비꽃 채집을 나갑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첫 시집 『제비꽃 설탕 절임』을 읽고 난 뒤부터 이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디저트를 꼭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제비꽃 설탕 절임. 봄이 내어준 색과 향을 통째로 보존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말이지요. 직접 키운 꽃으로 만들고 싶어서 꾸준히 화분에 제비꽃을 심어보았지만 절임을 만들 만큼 충분히 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몇 해 전 봄, 멀지 않은 빈터에 빼곡히 펼쳐진 제비꽃밭을 만났던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비꽃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요. 흰빛이 조금 도는 것도 있고, 꽃잎 끝이 헤져 있기도 하고, 아직 다 피지 않았거나 벌써 시들 채비를 합니다. 절임하기에 좋은 꽃은 새로 돋아 보라색이 진하되 너무 작거나 어리지 않은 것, 다섯 잎을 조금 삐뚤어진 별 모양으로 활짝 펼치고 있는 꽃입니다. 충만하지만 아직 소진되지 않은 잠시. 우리가 붙잡고 싶은 순간은 딱 그런 한때가 아닐까요. 최대한 흠집이 덜한 꽃을 골라 조심히 줄기까지 따옵니다. 나름의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친 뒤 들판을 떠날 때면 두고 온 꽃들이 마음에 걸려요. 예쁜 모양만 골라 얻으려는 체리피커(cherry picker)가 된 것 같기도 해서 미안합니다. 제비꽃의 입장에서야 선택받지 않아 다행이겠지만요.
그렇게 생겨난 제비꽃 다발을 조심스럽게 모아 쥐고 돌아와 살짝 씻어낸 뒤, 식용 붓으로 계란 흰자를 얇게 바르고 설탕을 고루 묻혀 말립니다. 꽃의 모양을 살려가며 펼쳐두는 것이 관건이에요. 줄기를 떼어낼 때 꽃잎까지 함께 부서지는 경우가 많아 손의 힘을 최대한 빼고 조심히 다루어야 합니다. 예쁘게 잘 굳은 제비꽃 설탕 절임은 케이크나 푸딩 위에 장식으로 올리거나 다과의 간식으로 내놓습니다. 혹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띄우면 제비꽃의 색이 풀려나오며 라벤더 빛깔 우유가 됩니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면 더 기쁠 것 같아요.
박상수 시인의 시 「다하지 못한 마음」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이상한 슬픔과 빛, 소금과 허브로 잘 절여두었다가 건조시킨 후에 꽁꽁 싸매두자 1년 뒤에 연잎 껍질을 풀면 비로소 오늘의 이 기분이 손에 배어나오도록”. 이 문장을 읽으며 갓 밀봉해둔 제비꽃 설탕 절임을 떠올렸습니다. 절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꽃과 설탕과 시간입니다. 제비꽃을 굳혀 사라지려는 색을 조금이나마 더 붙잡고 싶어지는 건 우리가 가진 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바람 부는 들판에 쭈그려 앉아 다 얻지도 못할 보랏빛을 골라내며 제가 느낀 미안함은 그런 종류의 안타까움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이미 봄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쩌면 계절을 진정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지나온 기억을 곱씹어 음미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하루가 지난 뒤 써내려가는 그날의 일기처럼요.
지금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한 번 더 다른 형태로 저장해두어야만 안심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계절을 잘 말려두었다가 뚜껑을 열면 올해의 제비꽃색이 흘러나오도록. 그러면 언젠가 당신을 만났을 때 이 봄의 가장 예쁜 조각을 건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