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녔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맥락에 상관없이 갑자기 겨울이 싫다는 말을 하곤 했다. 여름에도 겨울이 싫다는 얘기를 아주 많이 했다. 그건 아마 여름이 끝나는 게 무서워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엔 겨울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내가 아니어도 되는 순간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혼자 있으면 내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래서 겨울이 좋았다. 추우면 온몸의 감각이 둔해지니까. 감은 머리를 말리지 않고 새벽에 돌아다니면 기분이 좋았다. 코를 미친 듯이 훌쩍이다가 넋이 완전히 나가버린 내가 마음에 들었다. 칼바람을 맞으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폐가 너무 시원해서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과거의 나는 세상에서 세 번째로 추운 동네로 여행을 갔다. 피부가 다 벗겨지는 추위 속에서도 나는 밖을 씩씩하게 걸어 다녔고, 너무나도 행복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에서 다들 뜨거운 보온병을 끌어안고 자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몹시 추운 방에서 몸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추위에 떨면서 밤새 나는 되뇌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왜? 모르겠어. 이불이 불처럼 차가워. 기분이 좋아. 그러나 경기도 파주에서 나는 겨울을 싫어하게 된다.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파주에 강의를 하러 갔던 날. 파주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25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갑자기 발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겨울에 맨발이니 당연했다. 이게 동상이로구나. 나는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서 발을 녹이려고 했다. 문을 연 카페가 없었다.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느낌 대신, 이러다 내 소중한 발을 잃어버릴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날 나는 내가 끔찍이도 소중했다. 나는 나를 아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의 겨울은 아직도 내게 속삭인다. 조심해.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잊어서는 안 돼. 너는 너야.
PIN 030 안미옥, 『힌트 없음』
나는 시인들이 시를 어떻게 썼는지 추측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자기가 쓴 것을 어째서 시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결코 알아낼 수 없는 비밀을 파헤치려고 독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안미옥 시인의 『힌트 없음』은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는지 조금의 힌트도 주지 않는다. 화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화자는 항상 지쳐 있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자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는다. 안미옥이 힌트를 주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세계에 복수하지 왜 나한테 이러는지 모르겠다.
다가오는 3월, 핀 시인선 057 김복희 시인의 『생 마음』이 출간됩니다. 고전적이고 토속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민담, 타령들을 재해석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들을 결합시켜 그 안의 사람과 사람 사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영혼에 이어진 여러 순수하고 깨끗한, 혹은 날것 그대로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 『생 마음』 기대해주세요. 🩷
3월에는 김복희 시인의 이야기로 꽉꽉 채운 詩詩낙락 레터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면, 3월 레터도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