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이야기의 계절입니다. 겨울이 되면 우리는 따뜻한 곳에 모여 따뜻한 것을 품고 이야기를 생각하죠. 혼자여도, 여럿이 모여 있어도, 재잘재잘 대화를 나눌 때도, 침묵을 지킬 때도 우리는 그저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 둘 이상의 이야기,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겨울밤 골목, 참으로 시린 그곳에 엎드린 집집마다 불 밝힌 창문을 보면 나는, 오. 저곳엔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바짝 귀를 대고 싶어져요. 입을 대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도 하지요. 하얀 입김으로 만든 동그란 자리 위에 손가락을 대고 무어라도 적어볼까. 나는 내게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있나 싶어 가만히 놀라기도 합니다.
겨울. 밤이 울창한 이야기의 계절.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연마되고 있습니다. 그 모양을 공장에 비유한다면, 굴뚝 위로 구름 같은 연기들 그치질 않을 거예요. 이야기 공장의 연기는 실제로 구름과 같아요. 부드럽고 아름답죠.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나는 이야기 때문에 기침을 앓거나 병적 손해에 이르게 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런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요. 무해한 이야기에도 의존성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요. 겨울밤 골목에서의 내가 느끼듯 한 번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고 불현듯 나타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거듭되어 쌓여가는 이야기. 중독이라면 중독일 것이며 사랑이라 해도 문제없을,
이야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인물 사건 배경 뉘앙스 무엇 하나 빠질 수 없어 고민이 되겠죠. 하지만 나는 온도, 라 대답하고 싶어요. 제대로 된 이야기의 속은 따뜻하고 겉은 서늘한 법이니까. 이에 적정(適正)이라든가 기준 같은 것이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글쎄 개개별별 가가호호 다른 입장이겠으나 하여간 겉은 서늘하고 속은 따뜻한 상태면 좋다고 믿습니다. 차분하게 전달해 오는 견딜 수 없는 정념의 양태. 발터 벤야민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이야기라고 했던 것 같아요. 겨울의 혹독함 속에서 외투에 몸을 묻은 채 걸어갈 때의 기분을 생각해보세요. 얼어붙은 얼굴 몸 안쪽에서 올라오는 열기. 꿈. 그것이 이야기입니다. 겨울-이야기의 계절을 나는 기뻐하며 사랑합니다. 아마 당신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 PIN 047 서대경, 『굴뚝의 기사』
겨울-이야기를 위해 서대경의 『굴뚝의 기사』를 생각합니다. 청색왜성 같은 이 시집은 잔뜩 수축한 채 파랗게 타오르고 있어요. 모든 이야기의 원형인 꿈을 닮은 시집이랄까. “기지와 미지의 경계를 통과하”며 “분열과 탈주”(에세이 「원숭이와 나」)를 거듭하는 ‘장자적 모먼트’가 있어요. 온통 이야기인 이 시집을 나는 참으로 좋아하고 특히 겨울이면 품에 안듯 떠올립니다. 작고 귀엽고 나비처럼 춤을 출 줄 아는 한 마리 원숭이가 생긴 것만 같아 안심이 되지요. 당신의 겨울-이야기는 『굴뚝의 기사』로 풍요로워질 수 있어요. 산타클로스와 순록 썰매 이야기보다 돈독하게, 스크루지와 세 유령 이야기보다 스산하게 당신 겨울의 낮과 밤을 미몽의 온도로 채워줄 거라고 장담하겠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특별호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덕분에 올해부터는 겨울, 봄, 여름, 가을 고정으로 시인들의 사계절 이야기를 발행합니다. 🥹 다음 겨울호 두 번째 시인의 이야기는 2월 말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과연 두 번째 시인은 누구일까요? ✔️ 힌트 : 핀 시인선 43번. 어딘가 늘 추운(?) 시인의 겨울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