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은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수록 시 「여의도」
「여의도」라는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화자는 눈 내리는 밤, 차를 몰고 여의도로 향하고 있는데요. 이 필름에 기록된 것은 아무도 그렇게까지는 듣지 못했을, 들었더라도 곧 놓쳐버렸을 “눈 내리는 소리”입니다. 눈 내리는 소리는 “한 송이씩 허공을 그으며 아주 잠깐씩 허공을 움켜쥐었다가 놓는 소리”이며 “어둠을 휘젓는 빛줄기들”, “이토록 시끄러운 하양”의 소리입니다. 운전자인 화자는 아마 혼자인 듯하고, 오늘 그의 하루를 어떤 소음들이 채웠을지 그의 어제와 그제는 어떠했고 미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화자가 무언가를 고요히 견디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고층 빌딩들이 아주 조금씩 / 기울어지면서 내는 흐느낌”을 듣는 이니까요.
화려한 불빛과 모두가 한곳으로 향하고 있는 도로와 적막과 피와 눈. 이 아름답고 고요한 장면 속에서도 화자의 마음을 찢고 나오는 특정한 소리가 있습니다. 파열음이자 흐느낌인 이 소리는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덮어버리는 깨끗한 소리이기도 합니다. 바로 나의 목소리예요.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 하나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 미처 내지 못했던 소리들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저에게 늘 미스터리한 위로를 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