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김연덕 시인님의 시집 출간을 축하드려요. 『재와 사랑의 미래』 『폭포 열기』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인데요.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하신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김연덕입니다. 다정한 축하 감사합니다.
『재와 사랑의 미래』와 『폭포 열기』 사이에는 3년 반이라는 시간의 틈이 있었는데요. 『폭포 열기』 출간 후 5개월이 지나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을 출간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폭이 좁고 유속이 빠른 꿈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에요. 작년에 『폭포 열기』의 교정지를 보면서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을 작업했는데,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에 실린 서른 편의 시 모두 7-8개월 만에 썼어요. 며칠 만에 열 편 정도의 시를 몰아서 쓰기도 했었고요. 저는 원래 시를 매우 느리게 쓰는 편이라 이런 작업 속도는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는데요. 제 안에 있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가장 빠르게 쏟아냈다는 것에서 오는 이상함과 슬픔, 시원함이 있었어요. 시집 출간과 함께 봄이 오고 있어, 어린 시절과 그 시절 특유의 따뜻하고 아지랑이같이 흐릿한 기운들에 대해 더 골몰하게 되는 요즘이기도 했습니다.
Q : 시집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을 이루고 있는 주된 이미지는 과거의 기억(특히 유년 시절)과 집, 그리고 가족인 것 같은데요. 시인님께 유년, 가족, 집이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저는 아직까지도 제가 살았던 그 집의 구조가 그대로 등장하는 꿈을 꽤 자주 꿔요. 저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들 모두가요. 집의 위치가 위치였던 만큼 외부로부터 조금은 단절된 채 살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꿈 역시도 현실을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점에서 옛집 꿈은 제게 묘한 느낌을 줘요. 꿈에서 깨어나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창을 통해 새 햇빛이 들어오고, 잠깐의 정적 뒤 그 집이 다시 기억 저편으로 뒷걸음질 칠 때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답니다. 시간의 무상함도 느끼고 여전히 찾아오는 옛집의 장면들에 위로와 뭉클함도 느끼고, 시간이 깨트릴 수 없는 특정 이미지의 힘에서 약간의 두려움도 느끼고요.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함께 살았던 가족 구성원들도 꿈에 등장해요. 그 집과 같은 집은 가본 적도 없고 지금 흔히 가볼 수도 없기 때문에 저에게도, 제 가족들에게도 부암동 산속의 집이 아주 그립고 독점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Q : 유년 시절 김연덕 시인님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아홉 살 때부터 제빵사가 되고 싶었어요. 최초의 구체적인 장래희망이었죠. 초등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주제로 그려보라고 했던 그림 숙제에는, 늘 빵과 케이크가 가득 들어간 쇼케이스와 흰 제빵복, 구름처럼 불룩하고 긴 모자를 쓴 제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자주 갔던 동네 빵집이 있었는데, 사장님께 이곳에 취업하고 싶다고 이야기도 했었고 엄마에게 제빵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던 기억도 있어요. 엄마가 저런 학원은 어른들이 가는 곳이니 나중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도, 지금 당장 가고 싶다고, 학교는 안 다녀도 된다고 떼도 썼었고요.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만, 제빵 일에 대한 동경은 여전히 있어요. 저는 시를 사랑하면서도 가끔 시가 실체 없는 몸으로, 그러나 한 번 발표하고 나면 아주 오랜 시간 기록에 남는다는 사실이 조금 무서운데, 빵은 그와 반대라 아름다워요. 향기가 나고, 말랑하거나 딱딱하고, 자르거나 구울 수 있는 몸이 있죠. 다 먹고 나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요.
Q : 시집을 읽으면 (당연하게도) 시인님의 가족분들이 궁금해져요. 시인님의 가족 구성원분들을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거기에 부모님과 언니, 오빠, 쌍둥이 동생과 저까지 여덟 식구가 부암동 집에 몰려 살았죠. 제가 초등학생 때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저희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새롭거나 아주 낯설고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 드라마처럼 저희 가족들도 북적이며 단체 생활을 했고, 개개인의 캐릭터도 그곳의 등장인물처럼 다채로웠거든요.
군인이셨던 할아버지는 매우 엄격하고 고지식한 분이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제가 할아버지의 다른 면모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가 화를 내고 갇혀 있는 부분의 안쪽에 대해서요.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슬픔과 취향과 부드러움에 대해서요. 그때는 그랬어도 지금은 알고 싶어서, 시집에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된 것 같고요. 다카라즈카를 꿈꾸셨던 할머니는 현실에서도 극적인 성격을 가진 분이요. 애교도 많고 질투도 많으시고, 화장품과 싸구려 과자들과 젊음을 사랑하는 분이셨죠. 저는 그런 할머니를 좀 귀여워했고요. 젊음, 배우로서의 열망과 그럴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괴로움에서 씨름하다 가셨어요.
시집에도 나오지만, 성악가를 꿈꾸었던 아빠는 결국 은행원이 되었는데, 생활에 대한 책임감이 큰 사람이었어요. 마당에서 항상 아기용 차를 끌어주고, 비눗방울을 불어주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었고요. 시집의 마지막 시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에 비눗방울 사진이 첨부되어 있는데, 아빠가 분 비눗방울 사진이에요. 엄마는 81년도에 결혼하면서 부암동 집으로 왔어요. 결혼 전 살았던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그 집에서 보냈고요. 집안의 대소사와 온갖 복잡다단한 집안 어른들의 감정을 중간에서 조율하던, 그러면서도 그것을 크게 힘들어하지 않던 단단한 사람이었어요. 그 시절 여자에게 주어졌던 전통적인 역할과는 구분되는 다른 종류의 힘이 있는 사람이었죠.
앞서 이야기했지만, 저는 사 남매로 꽤 다복한 편이에요. 언니, 오빠와 나이 차가 큰데(언니와는 14살, 오빠와는 10살 차이가 져요) 늦둥이 쌍둥이로 태어났죠. 그래서 언니와 오빠 곁에서 성장했을 때 일반적인 언니, 오빠의 느낌보다는, 그러니까 동시대에서 옹기종기 커간다는 감각보다는 부모도 형제도 아닌, ‘다음 단계의 사람들’ 같은 특정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어요. 반대로, 매년 같은 학년으로 올라가는 동갑인 쌍둥이 자매가 있었기에 남매 생활 양극단을 체험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쩌면 저는 남매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감각을 잘 모르는 걸 수도 있겠어요.
Q : 위의 질문에 이어서, 시인님의 쌍둥이 자매가 시 안에서 등장하는데 쌍둥이라면 보통 자매들보다 더 애틋할 것 같아요. 또 다른 ‘나’가 한 명 더 있는 느낌? 쌍둥이들은 정말로 무언가 통하는 느낌이 드나요? 아플 때도 같이 아픈가요? 쌍둥이가 있다는 건 어떤 감각인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쌍둥이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정말 많이 했던 질문이에요!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그런 쪽의 결속은 잘 없답니다. 텔레파시가 통한다거나, 한 명이 아플 때 나머지 한 명이 아프게 된다거나 하는 전형적인 오해들이 있는데 저와 제 쌍둥이 동생은 단 한 번도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쌍둥이라 친하고 애틋한 느낌은 물론 있지만, 성장기에는 오히려 서로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도 저희를 비교하지 않아도 그냥 저희끼리 서로를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 동갑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더 격렬한 말들이 오가며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와 너무 다른 누군가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계속 마주하는 감각이 저는 버거웠어요. 저희는 성향도, 어투도,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방식도, 상처와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도 모두 달랐거든요.
쌍둥이와는 성인이 되고 난 후, 쌍둥이가 도쿄 생활을 시작하고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서부터 더 가까워졌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성장기에 서로가 서로를 왜 힘들어했는지, 무엇이 부러웠고 무엇이 미웠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거든요. 그 과정 속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응원하고 사랑할 수 있었어요. 적당한 거리감으로 서로의 세계를 존중할 수 있게 되었고요. 나이를 먹어가며 날카로웠던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졌기 때문도 있지만, 아마 20대를 지나오며 각자에게 많은 외부가 생겨서 가능해진 것 같아요.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던 저희에게, 이제 서로가 모르는 친구들과 이야기와 고민과 사랑과 농담이 생겼죠. 저는 그것이 슬프다기보다는 이제야 비로소 저희의 세계가 자연스러워졌음을 느껴요. 저는 도쿄를 잘 모르지만, 쌍둥이가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쿄의 안녕을 빌게 되고, 도쿄의 거리와 사계절이 궁금해진답니다.
Q : 『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에는 주로 과거의 집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시인님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해주세요!
마침 시집이 출간되기 2, 3주 전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지금 저는 서울 은평구의 한 조용한 주택단지에서 지내고 있답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해서, 모든 번화가와는 멀어졌지만 그런 이동의 피로를 잊을 수 있을 만큼 아늑한 집이에요. 제가 자주 작업하는 방의 정사각 창문으로는 빽빽하게 모인 나무들이 보이고요. 이사 온 첫날, 날이 무척 맑아 초록색의 나무들과 마주했는데, 며칠 지나고 맹렬히 눈이 내린 날에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더라고요. 시 수업 준비로 다른 날보다 몇 배가 분주한 날이었는데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이사 오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은 볕이 잘 안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해가 강하게 내리쬐서 좋아요. 이사 온 뒤로 오후 5시 30분부터 6시까지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는데, 제 방 벽면에 놓인 커다란 책장 전체가 노랗게 빛나는 시간이에요.
Q : 시인님은 이사를 자주 다니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한곳에 오래 붙박여 사시는 편인가요? 지금까지의 이사 경험이나 거쳐 온 집에 대한 기억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한곳에 붙박여 오래 사는 편이에요. 시집에 등장하는 집이자, 저의 첫 집, 어린 시절 성장했던 부암동 집에서는 12년 정도를 살았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는 아현역 근처에 살았어요. 20대 중후반과 30대 초입을 보낸 곳은 서촌 근방이고요. 부암동은 아니지만, 다시 종로로 돌아와 서촌에서 살았던 무렵 옛날 생각이 많이 나 좋았어요. 근처에 인왕산이 있고, 낮은 건물들에, 계절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아름다움으로 펼쳐지는 산책로의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체험했거든요. 15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 부암동에 자주 혼자 가보기도 했고요.
Q : 김연덕 시인님은 종종 ‘사랑의 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송희지 시인님께서 ‘눈부신 사랑의 기록자’라는 근사한 별칭을 붙여주시기도 했어요. 전작에서부터 지금 세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시인님께서는 꾸준히 ‘사랑’에 대해 말해오신 것 같아요. ‘눈부신 사랑의 기록자’라는 이 별칭은 마음에 드시나요? 그리고 시인님께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과분할 만큼 아름다운 별칭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마음에 드는 별칭이지만, 그만큼 제가 저 스스로나 주변을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분주한 시기에는 조금 무겁게 다가오는 별칭이기도 합니다. 제 마음과 자세를 다시 다잡게 되는 별칭이라고 할까요. ‘사랑의 기록자’에 문장의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들에 특히 그런 것 같은데, 그래서 저는 ‘눈부신 사랑’에 더 무게를 싣고 싶어요. 저는 단지 기록자일 뿐이고,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다양한 형태와 세기로 제게 찾아와준 ‘눈부신 사랑’들을 기억하려고 해요. 그 사랑들에 압도되어 무언가 겨우 남기는 상태가 저에게는 시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열정적으로 타오르고, 무언가에 끝없이 집중하고 있는 에너지도 사랑이지만, 요즘 제가 감각하는 사랑은 더 희미한 것들이에요. 미약하지만 계속해 저의 기억과 꿈속으로 찾아와주는 부암동 집의 이미지, 지금 세상에 없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그림자, 그리고 계속해 쌓여가고 있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기억들에서 사랑을 느껴요. 언젠가 사라져버릴 어렴풋하고 유한한 것들이지만, 가끔 영원할 것처럼 제 곁에 머물러주는 빛나는 순간들, 괴롭고 생동하는 모든 순간들마저도 이제 사랑 같아요.
Q : 이번 시집에서 ‘향’이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써주셨는데, 에세이에 등장한 향 말고 특별히 좋아하는 향이 있나요? 애정하는 향수를 소개해주셔도 좋아요!
자연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너무 세련된 향보다는 나무와 흙과 안개의 느낌을 담은 이솝과 그랑핸드의 향을 좋아합니다. 약간은 거칠고 자연스러운 향이요.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향을 좋아하고요.
사실 저는 향수를 거의 뿌리지 않지만, 유일하게 가끔 뿌리는 향수가 있어요. 제 주변 분들은 거의 뿌리지 않는 소박하고 울퉁불퉁한 향인데, 러쉬의 ‘더티’ 향수를 좋아해요. 강한 박하 향이 나고, 주로 남성분들이 뿌리는 향이더라고요.
Q : 시인님께서는 시를 쓰지 않는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이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보러 다닌다거나 하는 기분 전환 활동이나 취미 활동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시 쓰는 시간 외에는 경제 활동으로 정말 바쁜 것 같아요. 일주일에 세 번,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양식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있고요. 저녁 시간에는 외부 수업이나 과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브랜드의 브랜딩 관련 글을 청탁받아 쓰기도 하고, 산문 원고도 열심히 쓰고요. 그 시간들 사이사이에 겨우 시를 쓰며 보내고 있습니다. 따로 휴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에 너무 틈이 없어 고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생활에 날카롭게 닿아 있는 감각으로 시를 읽고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어요. 동시에 여러 개의 삶을 살고, 여러 공간과 정체성을 산책하듯 오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고요.
Q : 자유롭게 단 한 사람,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볼 수 있다면, 누구의 일기장을 읽어보고 싶나요?
앞으로 60년 뒤, 제가 살아 있다면, 아흔한 살의 제가 쓴 일기장을 훔쳐 읽어보고 싶어요. 그때의 제 주변을 감싸고 있을 일상적인 장면들, 떠나간 사람들, 새로이 찾아와준 사람들, 좋아하는 음식, 여전하고 여전하지 않을 그 모든 것, 배우게 될 것, 놓치고 있는 것, 2085년이 제게 요구하는 삶과 글쓰기가 무엇일지 궁금해져요.
Q : 핀 시인선에는 「시인의 말」이 없는데요. 이 지면을 통해 「시인의 말」을 덧붙인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
Q :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제 집에 찾아와주셔서, 머물러주시고 그 시간을 함께 체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옛이야기를 통해 다른 시간대로 건너가보실 수 있었다면, 동시에 읽어주신 분들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실 수 있던 시간이라면 저는 더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옛집에 찾아와주신 분들 덕에 옛집도 덜 외롭고 덜 부끄러웠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새삼스러운 기쁨들로 가득한 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