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봉주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출간 축하드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안녕하세요, 봉주연입니다. 시집 계약한 날로 치면 1년 반 정도 걸린 시집이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30년이 걸려서 첫 시집을 쓴 기분이에요. 처음 현대문학에서 등단했을 때처럼 만나는 분마다 축하를 해주셔서 정말 기쁘고 정신없는 날들 보내고 있습니다.
Q: 시집 제목이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인데 ‘두 개의 편지’는 각각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가끔 누군가를 대할 때, 내 눈앞의 이 사람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내가 알던 사람이 맞을까, 내가 사랑을 쏟던 그 대상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믿음이 무너지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생경함을 주는 사람이겠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오늘 하루만 해도 나는 꽤 여러 번 정체를 바꾸니까요.
‘두 개의 편지’는 그래서 내가 아는 (혹은 안다고 착각하는) 당신과,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 두 명이자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인 것입니다. 표제작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의 첫 구절 “한 통은 당신에게 / 다른 한 통은 사라진 당신에게”는 이런 이유에서 쓴 문장입니다. 여기서 ‘사라진 당신’은 물리적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눈앞의 사람, 내가 피부를 쓰다듬고 있는 사람이 영영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Q: 봉주연 시인님은 신문사의 편집기자로도 재직 중이시죠. 일과 창작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문장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시인과 편집기자는 연장선에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다루는 문장의 문법이 워낙 양극단에 있긴 합니다만, 원래 양극은 결국 서로 만나게 되어있다는 말이 있죠. 시와 신문의 헤드라인 모두 독자를 사로잡아야 하는 글이기 때문에 두 극단을 오가는 것이 꽤 재밌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요즘 들어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잦아지네요. 하지만 노동할 때 문학이 간절해지는 건 분명합니다.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시를 쓰진 못했을 것 같아요.
Q: 해설을 써주신 송현지 평론가는 “편지에는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있다”는 말을 하셨어요. 또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라는 시를 보면 “결말을 다 알고서도 같은 선택을 할 건지.”라는 구절이 있고요. 만약 시인님이 어떤 일의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바꾸실 건가요? 아니면 그대로 받아들이실 건가요?
바꾸고 싶은 미래라면 아마도 불행한 일일 텐데, 불행한 일을 애써 바꾸면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라는 시에서 “결말을 다 알고서도 같은 선택을 할 건지”라고 묻지만 결국 “미래를 알고 있는 눈빛으로 포옹을 한다”라고 끝맺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또 당첨이라면 진지하게 미래를 바꿔볼 생각을 할 것 같아요.)
Q: 위의 질문과 이어서, 시인님의 시집을 읽다 보니 테드 창의 <내 인생의 이야기>와 그를 원작으로 영화화한 <컨택트>가 은은하게 생각났어요. 봉주연 시인님은 이 두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아니라면 봉주연 시인님이 영감을 받은 다른 영화나 글, 소설, 시, 기타 등등은 무엇인가요?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를 정말 여러 번 봤습니다. 시를 쓸 때 컨택트 OST를 틀어놨을 정도였어요. 어쩌면 모든 일엔 결말이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결말을 향해 현재를 수행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제 첫 시집의 큰 주제로 잡았습니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여러 곳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영화 <파주>, <윤희에게>, <그을린 사랑>에서 시집에 주된 정서나 분위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 특히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을 보고서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라는 제목을 떠올렸어요.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아채실 거예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이해』,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세 권은 시를 쓰는 내내 옆에 껴두고 있었습니다.
Q: 시인님이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한 통 쓸 수 있다면, 누구에게 남길 건가요?
음, ‘죽기 전’이라는 상황이라면, 편지나 영상같이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걸 남기고 싶진 않아요. 편지를 열어볼 때마다 읽는 사람이 너무 슬플 것 같아서요. 그래도 꼭 남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편지를 절대 읽을 일 없는 사람에게 쓰고 싶어요. 오랜 시간을 만난, 지금은 더 연락하지 못하는 연인에게 쓰고 싶어요. 제가 시인이 될 거라고 저보다 먼저 알아봐준 사람이어서, 마지막 순간이라면 그 연인이 많이 떠오를 것 같아요.
Q: 「랜딩」이나 「미래의 집」 같은 시에서는 유난히 ‘집’의 이미지가 도드라져요. 시인님께서는 만약 집을 짓는다면 어디에 어떻게 짓고 싶나요, 또 누구와 함께 살고 싶나요?
집은 저한테 중요한 시어입니다. 사람과의 미래를 그릴 때 그 사람을 일종의 ‘정처’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곧 집이고 집이 곧 사람인……. 집을 짓는다면 경복궁역 근처 서촌에 짓고 싶네요. 우선 직장이 가깝고 (가장 중요) 높은 건물 없어서 햇볕이 골고루 들어오고, 맛집과 예쁜 카페가 많거든요. 시 쓰기 좋은 동네일 것 같아요. 방을 많이 지을 수 있다면 부모님을 모시고 싶지만, 아마 거절하실 것 같네요. 딸 눈치를 많이 보시거든요.
Q: 시인님이 최근에 꾼 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꿈은 무엇인가요?
위 질문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으로 얘기했던, 지금은 만나지 않는 연인이 꿈에 나왔어요. 약속 없이 집 앞에 나타나서 “같이 살고 싶어 했잖아”라고 인사를 꺼냈는데, 아무런 어색함이 없더라고요. 제가 너무 어린 시기에 만나서 철없이 같이 살자는 말을 꺼내곤 했는데, 그 철없는 말을 진지한 약속으로 생각해줬던 것 같아요.
Q: 시를 쓸 때 이것만큼은 꼭 지킨다, 는 규칙이나 신념 같은 게 있나요?
시집에 실린 「집들이」란 시에 ‘나는 나를 다 보여줬어요’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이게 적어도 첫 시집에 한해서는 제 시론이라고 생각한 문장이에요. 저는 시 안에서 남들에게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고백하곤 합니다. 그래서 시 안에선 무거운 외투를 벗은 듯 홀가분하게 언덕을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첫 시집을 쓸 때 ‘나를 다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고백하듯 문장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Q: 에세이 「미래의 냄새」에서는 신문사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재난 상황을 보도해야만 하는 기자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어요. 혹시 (말해줄 수 있는 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나 보도가 있을까요?
에세이에서 제가 하는 일이 ‘예측 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저는 취재부서가 아니라 편집부여서, 밖에서 취재기자가 전달하는 기사를 사무실에서 받아보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손쓸 수 없는 어떤 재난이 터지면, 그 재난 자체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지만 마감을 해야하는 직업인의 입장에선 일을 패턴화하고 양식화시켜야 하거든요. 바깥은 소란스러워도 사무실 안에선 고요하게, 들어올 기사의 방향을 짐작해서 제목을 뽑아놔야 합니다. 그래서 큰 사고가 있을 때 좀 더 무력감을 느끼는 편이에요. 가장 최근에 일을 꼽자면 이태원 참사가 떠오릅니다. 선배들이 작업한 신문 지면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데, 점차 완성돼가는 지면을 모니터로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한창 탄핵 정국이라 편집국이 많이 바쁜데,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리 바빠도 세월호 때만큼 힘들진 않다고 많이 말씀하십니다. 처음엔 전원 구조라고 했다가, 오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몇 날 며칠 사상자의 숫자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그 노동 자체만으로도 심적인 트라우마를 안겼던 것 같아요.
Q: 핀 시인선에는 〈시인의 말〉이 없는데요. 이 지면을 통해 〈시인의 말〉을 덧붙인다면?
시집에 서명할 때 쓰는 문구가 있는데, 그걸 시인의 말이라 생각하고 적고 있어요.
‘먼 시간을 돌아 당신에게’
‘먼 길’을 돌았다는 말보다 ‘먼 시간’을 돌아 당신에게 당도한 시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고백을 적어 내려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어지러운 시기에 나온 시집이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제 첫 시집은 어떤 불행 앞에서도 “다녀올게, 그래도 우리 괜찮아”라고 말하는 단단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러한 믿음과 희망을 얻기를 바랍니다. 숫눈길을 처음 내딛는 마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