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시인님의 근황이 궁금해요!
잠을 많이 잡니다. 꿈도 많이 꿉니다. 아직 날이 춥지만 그래도 산책을 자주 합니다. 그 외에는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 레드벨벳,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의 히트곡들을 작업한 작사가로 활동하다 시인으로 등단했는데요. 어떤 계기로 시를 만나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나요?
시를 쓰는 일과 가사를 쓰는 일 사이에는 별 공통점이 없지만, 계기는 연관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학창 시절에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는데 카피를 어느 정도 하다가 보니 자작곡을 쓰고 싶어졌어요. 멜로디 라인은 어떻게든 만들었는데 그 뒤가 문제였어요. 노랫말이 정말 단 한 줄도 나오지를 않는 거예요. 한국말은 평소에 하니까 쉽게 쓰겠지, 라고 생각했던 게 오만이었던 거죠. 그때 ‘음유시인’도 ‘시인’이니까 시집을 참고하자, 이렇게 생각해서 서점에 갔어요. 단순하죠? (웃음) 서가에 꽂힌 시집을 이것저것 뽑아서 훑어보았어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왜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음에도 가슴에 박히는 단어, 문장이 하나씩은 있었어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종종 읽었어요. 시집을 하나둘 읽다가 보니까 시를, 시가 안 돼도 시 같은 걸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결과적으로 그 곡의 가사를 쓰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무래도 좋았어요. 아무튼 시에 빠져들게 되었으니까요.
3. 한 인터뷰에서 “‘클 태’가 들어간 본명 ‘태우’로 작사를 하고, ‘악기줄 현’이 들어간 필명 ‘현우’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흥미로운 분열’을 갖고 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몸을 다 던질 수 있는데, 재미없는 일은 잘 못한다. 가사와 시가 주는 낙차, 서로 다른 이름이 주는 이상한 분열을 오롯이 즐긴다”고 했는데요. 선생님께 시는 어떤 의미인가요?
표현의 방식이에요. 제게는 음악도 특별하고 시도 특별해요. 다만 음악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 시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어요. 그림을 잘 그렸다면 그림으로도 표현하려고 해봤을 것 같아요. 어떤 순간은, 부러 시적인 언어로 발화하는 게 아니라 시가 아니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4. 이번 시집 제목은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입니다. 이 제목을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번 시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을까요?
표제작이 된 시는 「어느 한 바닷가 마을로부터」인데요. 사실 마지막까지 시집에 넣어야 하나 고민했던 작품 중 하나기도 해요. 시인이 아닌 친구들에게 제목 시안들만 쭉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았어요. 시는 한 편도 보여주지 않았어요.(웃음) 거기서 제일 많은 호응을 끌어낸 구절이라 그들의 믿음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갔어요. 실은 저 자신도 끌리는 제목 중 하나인 건 분명했지만 그래도 제 시선만을 믿을 수가 없어서요. 원고를 붙잡고 있다 보면 자의적이거나 괜히 난해한 말이 멋있어 보일 수 있잖아요. 많은 사물이 그렇듯 너무 가까워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 시집은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어요. 관계 속에서의 잔여 감정들, 이불킥하고 싶어지는 지난날들 같은 거라고 할까요. 물론 그렇게 읽지 않으셔도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독자분들이 각자 읽고 느끼시는 게 맞는 거죠.
5.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그리고 시 혹은 에세이와 관련된 실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겠어요?
「여의도」라는 시에 마음이 가요.
강을 오래 보면 우울해진다는데, 그렇다고 강을 안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이게 전문이에요. 원래 제법 긴 시였는데 결국 이 한 줄만 남게 되었어요. 나머지는 불현듯 밀려드는 슬픔에 대한 부연으로만 느껴져서요. 까닭 모를 슬픔에 괜히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요.
6. 「별리」 나 「백야」의 시에 나오는 ‘관조’적인 정서가 눈에 띄네요. 풍경들을 바라보지만 감정에 휘둘리거나 감성적이지 않고 무덤덤하며 이성적인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고고함까지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해 시인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가 시를 구조하고 문장을 쓰는 스타일 때문에 더 담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그것 또한 저라는 사람의 기질 때문인지도 몰라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잘 쏟아내지 못해요. 그게 답답할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요. 안 되는 걸 억지로 할 수도 없으니까요. 무디다기보다는 감정을 소화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실은 담담함이 아닌 담담한 척에 가까울 거예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몰라서 애써 웃지도 못하는 것처럼요.
7. 이번 시집의 시에는 ‘너’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너’는 어떨 땐 ‘당신’이 되기도 합니다. ‘너’ 혹은 ‘당신’의 구체적 대상은 있을 수도 있고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고요. 그대로 독자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이 독자와의 공감 코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공감의 소재는 도시인의 일상, 사랑, 이별, 죽음, 아픔(병)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고 가야 하는 숙명 같은 것들. 시인님은 그런 화두를 대수롭지 않게 풀어냄으로써 누군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의도하고 쓰신 건가요?
누구에게나 마음을 다독일 시간은 필요하고, 유예된 시절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거예요. 괜찮지 않아도 가까스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지, 있다고 해도 누구는 일 년, 누구는 평생, 누구는 눈을 감아서도, 어려울지 몰라요. 그저 저는 ‘아직 괜찮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읊조릴 따름이에요.
8. 시를 보면 “앞에 앉아 있는 상대와 말이 통하지 않거나 상대방이 딴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사람의 언어란 불확실한 것이므로 대화를 나눠도 완전히 화합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고 느껴지는데요. 또 하나, 시인님이 화두로 삼은 사랑이나 이별, 아픔, 죽음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당장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더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질문이 점점 딥해지는 기분인데요.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웃음) 이를테면 채혈실에서 피를 뽑는 마음인 거 같아요. 바늘에 찔리는 한때의 고통을 감내해야 몸속에 무엇이 흐르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시를 써서 나아질 것은 없을지언정 시를 통해서만 보이는 생각의 이면이 있지는 않을까요. 그로 인해 괜히 잠깐 더 불행해질 수도 있겠으나 정체를 몰라 대처할 수 없는 ‘모호한 아픔’보다는 ‘구체적인 아픔’을 아는 게 어느 시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해요.
9. 에세이 「아주 오래된 대화」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청년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시작해 자신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담백하고 깔끔한 서사로 풀어낸 글인데요. 4개의 소제목은 ‘노랑’으로 시작해 ‘노랑’으로 끝나지만 글 속에 ‘노랑’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의미로 갖는 매력적인 산문인 듯합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다양한 해석을 받아낼 구조가 튼튼히 갖추어져 있다”고 평한 신형철 평론가의 글이 떠올랐는데요. 이 글을 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이상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신호등의 빨강과 초록 사이의 노랑이나 아침과 저녁 사이의 노랑처럼요. ‘친구’가 주제라는 걸 듣자마자 떠올랐던 기억들이기도 해요.
10. 이번 시집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을 한두 줄로 설명한다면?
아무리 해도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곁에서 “나도 그래”라고 말해줄 수 있는 시집이기를 바라봅니다.
11. 시를 처음 접하거나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또 시인님의 합평 수업을 듣는 습작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친구 방에 놀러 간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깔끔하게 정돈된 미니멀리스트의 방도 있겠고, 벽부터 바닥까지 신기한 걸로 가득 채운 맥시멀리스트의 방도 있겠지요. 가구가 거의 없어 아주 새하얀 공간일 수도, 쇼핑백이 침대맡에 마구 쌓여 있을 수도, 이해할 수 없게 싱크대 위에 곰인형이 놓여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취향이나 배치, 사물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서 살짝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게 흥미롭고 재밌기도 하잖아요. 그 방 안에서 기꺼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오면 어떨까 합니다. 내가 바뀔 필요도 그가 바꿀 필요도 없을 거예요. 초대된 그의 집 안에서, 시집 안에서 편하게 논 다음 문을 열고 나온다면 자연스럽게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요.
12. 핀 시인선에는 <시인의 말>이 없는데요. 이 지면을 통해 <시인의 말>을 덧붙인다면?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구했다고 했다.
통로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퍼졌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화재 시 대피요령이 나오고 있었다.
해가 바뀌었다고 했다.
오후의 약속이 취소되었다.
혼자 살지 않는 집에 침묵이 가득했다.
이번 겨울은 얇은 티 한 장으로 보냈다. 블라인드를 걷지 않아서 그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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