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졌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여름과 겨울은 변했다. 길이가 아니라 결이.
당신이 기억하던 한국의 여름은 무엇이었냐고. 한국에 살고 있는데 마지막 한국의 여름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니, 어쩐지 SF 같다. 우리는 경량 우산을 매일 가방 안에 꼭 집어넣는다. 지갑처럼. 매번 쏟아지는 무더위 속의 쏟아지는 슬픔을 받아내기 위해.
우산이 없는 날은 그렇게 했다. 비가 오면 낙원상가에서부터 걸어서 운지법도 모르는 악기 구경을 하다가, 그치면 걷다가 시간이 맞는 영화를 아무거나 보고, 다시 찬양집에서 칼국수에 소주를 한잔했다.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가 갔다. 저녁에는 이상하게 비가 오지 않았다. 버스에 비가 왔던 빗방울들이 바람에 씻겨 나가는 것을 보면서 휴가는 갈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스콜이 한국으로 왔으니까.
심리검사 문항에서 좋아하는 계절에 고민도 없이 여름을 골라왔지만, 문학인치고 여름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한 시대가, 세대가 서점을 쓸어 가는 동안에도. 내가 기억하는 여름은 내 문장이 아니라 동료들의 작품 안에 더 많이 남아 있다.
여름이 오면 나는 꼭 여름 나라로 여행을 간다. 동생은 호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발리에서 만난다. 우리의 중간은 발리니까. 갈 때마다 느끼지만, 발리와 길리는 갈 때마다 발전한다. 미안하지만 발전해서 아름답지가 않다. 더 가까이에서 이 대자연과, 풍부한 산호를 보라고 뭔가를 자꾸 만든다. 때문에 산호는 죽는다. 우리는 곧 죽어버릴 산호의 사체를 본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발리의 선셋을 앞에 두고 여름 시집을 펼쳤다. 진짜 여름은 활자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내게 여름이란, 멸종이었다. 해변의 익사체였으며, 이제는 되감을 수 없는 테이프의 뒷면이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평생 처음, 내가 여름이라는 감각에 대해 시를 쓴다면 어느 허리를 끊어다 쓸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끝끝내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울리지도 웃기지도 비출 힘도 없어서 내게는, 그러니까 그것은 어쩐지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아서, 그리고 지금 내가 포착한 것은 어쩐지 곧 끝날 이야기인 것 같아서. 나는 점점 슬퍼졌다.
그렇게 또 새로운 한 여름의 한가운데 나는 서 있다.
지금 내가 쓴 이야기가 어쩐지 마지막 한 시절이 될 것 같다.
나는 매년 여름이 어렵다.
자꾸 낡아가는 문장을 붙잡는 기분이라서.